[뉴스비전e] 나는 쌍용에서 16년 동안 일하다가 1978년 동양시멘트로 자리를 옮겼다.

동양시멘트는 1967년 연산 300만 톤 규모로 국내 최대 시멘트 메이커로 부상한 뒤 1975년 증설로 연산 400만 톤 규모로 꾸준하게 성장해오고 있었다.

동양에서 얻은 가장 큰 보람은 1981년 시멘트 생산 연료를 벙커씨유에서 유연탄으로 대체한 것이다.

1979년 제2차 오일쇼크로 유가가 천정부지로 치솟기 시작했다. 3~5달러였던 유가가 2차 파동 때는 30달러까지 올라갔다. 1년 수출액의 4분의 1을 석유를 사는 데 써버리는 셈이었다.

시멘트업계는 공황에 빠졌다. 시멘트는 돌가루를 빻아 굽는데, 굽는 연료가 석유였다. 연료가 많이 소비되는 사업이어서 석유파동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연료를 바꾸자! 석유 대신 석탄을 쓰자!’

시멘트 굽는 연료를 벙커씨유에서 석탄으로 바꾸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다. 국내에서 흔하디 흔한 석탄은 전량 수입해야 하는 석유의 3분의 1 가격이었다. 유연탄을 가루로 만들어 섞고 열을 가해 1,350도 이상 올려야 했다.

공장에서 먹고 자며 연구에 매달린 끝에 석탄을 에너지원으로 한 시멘트 제조공정 개발에 성공했다. 석탄 분말이 폭발하지 않도록 고운 분말로 만들어 분사시켜 기름처럼 때는 획기적인 기술이었다.

시멘트 소성용 연료를 기름에서 유연탄(80퍼센트)과 기름(20퍼센트)으로 혼합해 사용하는 연료대체를 성공시켰다. 이는 시멘트산업 사상 최초의 성과였다. 연간 25만 킬로리터의 벙커씨유를 절감할 수 있었다. 3,500만 달러를 절약한 셈이었다. 이 공적으로 나는 1981년 ‘3·1문화상(기술상)’을 받기도 했다.

획기적인 기술이 개발되자 회사 안에서는 특허를 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나는 반대했다.

특허를 내는 대신 동양시멘트 제천공장에 모든 시멘트 메이커의 공장 사람들을 모이게 하고 기술세미나를 열었다. 결국 우리나라 시멘트 업체들이 싼값에 시멘트를 생산할 수 있게 되었으니 잘 된 일이다.

 

◆ 남기동 선생은...

1919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올해로 100살이다. 일본 제6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경성제국대학 신생 이공학부 응용화학과에 편입했다. 1946년 중앙공업연구소 지질광물연구소장, 요업 과장으로 근무하며 서울대, 고려대, 한양대 등에도 출강했다. 부산 피난 중에도 연구하며 공학도들을 가르쳤다. 6·25 후 운크라 건설위원장을 맡아 1957년 연산 20만 톤 규모의 문경시멘트공장을 건설했다. 화학과장, 공업국 기감(技監)으로 인천판유리공장, 충주비료공장 등 공장 건설 및 복구사업을 추진했다. 1960년 국내 대학 최초로 한양대에 요업공학과를 창설하고 학과장을 맡았다. 1962년 쌍용양회로 옮겨 서독 훔볼트의 신기술 ‘SP킬른(Kiln)’ 방식으로 1964년 연산 40만 톤 규모의 영월공장을 준공했는데, 최단 공사기간을 기록해 은탑산업훈장을 받았다. 영월공장 준공으로 우리나라는 시멘트 수출국으로 부상했다. 1968년 건설한 동해공장은 단위공장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였다. 공장 증설을 거듭해 1992년 우리나라 시멘트 생산량은 세계 5위가 되었다. 1978년 동양시멘트로 자리를 옮겨 2차 오일쇼크 때 시멘트 생산 연료를 벙커씨유에서 유연탄으로 대체하는 기술을 개발, 특허 대신 공개를 택해 업계를 위기에서 살려냈다. 이 공적으로 1981년 '3·1 문화상(기술상)'을 받았다. 인도네시아 수하르토(Suharto) 대통령 요청으로 1992년 인도네시아 최초의 시멘트공장인 '시비뇽 시멘트플랜트(P.T. SEMEN CIBINONG)'를 건설했다. 한국요업(세라믹) 학회, 한국화학공학회, 대한화학회등 3개 학회, 대한요업총협회(지금의 한국세라믹총협회) 회장으로 학계와 산업계의 유대를 다졌다. 학교, 연구소, 산업체가 참석하는 '시멘트심포지엄'을 개최하고, 한일국제세라믹스세미나를 조직해 학술교류는 물론 민간교류에도 힘썼다. 세라믹학회는 그의 호를 따 장학지원 프로그램인 '양송 상'을 제정했다. 1993년 인하대에서 명예공학박사 학위를 받고, 2006년 서울대 설립 60돌 기념 '한국을 일으킨 60인' 상, 2007년 세라믹학회 창립 50주년 특별공로상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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