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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銳目視之·날카로운 칼럼] 홍영표와 두산그룹친일보다 더 나쁜 것은 친일을 반성하지 않는 것이다···사람이 미래다? 반성하지 않는 사람에게 미래는 없다!

[뉴스비전e]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지역구인 부평은 일제강점기엔 병참기지가, 해방 후엔 미군기지가 들어선 곳이다.

친일파 송병준의 후손들이 미군기지 부지가 자신들 땅이라며 소송을 제기했을 때 ‘반민족행위자 재산환수 특별법’으로 지켜낸 곳이기도 하다. 당시 홍 대표도 특별법 제정을 위한 시민서명에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나섰다.

홍 대표는 '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내고 독립유공자들과 후손들도 자주 만나고 있다.

2013년엔 한국독립유공자협회로부터 감사패를 받기까지 했다. 하지만, 당시 포토그래퍼의 '스마일' 주문에 홍 대표는 차마 웃을 수가 없었다.

자신이 친일파의 후손이기 때문이다.

홍영표 대표가 2013년 11월 ‘독립 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낸 공로로 한국독립유공자협회로부터 감사패를 받고 있다. ⓒ홍영표 의원 홈페이지

홍 대표가 참여정부에서 일할 때 하루는 큰집 형님들이 몰려왔다.

친일인명사전에 조부의 이름이 등재됐다며 이의제기를 하자고 찾아왔던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조부가 몰락했지만 나눌 줄 아는 넉넉한 지주였고, 고창고등보통학교 설립에 참여한 교육가로만 알고 있었기에 충격이 컸다.

하지만, 홍 대표는 "어떤 사정이 있었건, 교육가로 선행을 했든,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고 부역했다면 변명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친일행위"라며 형님들을 돌려보냈다.

3·1절, 광복절이 다가올 때마다 부끄러워 어디론가 숨고 싶지만, ‘그럴수록 부끄러움을 아는 후손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용기를 낸다고 홍 대표는 털어놨다.

홍 대표는 광복 70주년인 2015년 자신의 홈페이지에 조부의 친일 행각을 소개하며 ‘친일 후손으로서 사죄드립니다’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조부의 죄지, 태어나지도 않았던 네가 무슨 죄냐’고 위로하는 이들도 있지만, 민족정기사업으로 칭찬을 받을 때는 거리 한복판에 벌거벗고 서 있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사법적 연좌제는 없어졌다 해도 일제 식민지배에 대한 국민들 가슴속 분노의 상처는 아물지 않았기 때문에 기회가 닿을 때마다 사실을 밝히며 사죄하고 반성하는 것이 자손인 자신의 운명이라 받아들인다"고 했다.

한 언론사로부터 '친일후손의 오늘'을 조명하는 특집기사의 인터뷰 요청을 받았을 때 ‘그냥 지금처럼 조용히 하던 일을 해가면서 용서를 구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고,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겠느냐? 오히려 더 화를 부를지 모른다"는 주변의 만류도 있었지만, 그는 '부끄러움을 아는 후손', '용서를 구하는 후손'으로 사는 것이 그나마 죄를 갚는 길이라 생각하고 용기를 냈다.

홍 대표는 젊은 시절 반독재 민주화운동에 투신했고, 자동차공장 용접공으로 노동운동에도 참여했다.

그는 조부로부터 어떤 유산이나 혜택도 받지 않았다.

홍 대표의 부친도 마찬가지였다.

부친은 서울대 법대 재학 중 법조인의 꿈을 키우다 부친의 친일 행위 사실을 알고 낙향해 평생 후학을 가르치며 살았다.

홍 대표는 2013년 부친상 때 독립유공자들의 조문을 받았다. 당시 부친의 영정을 바라보며 만감이 교차했다고 한다.

"평생 속죄하면서 사신 아버지와 민족정기사업에 힘을 보태는 저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잘 알고 있습니다. 민족 앞에 당당할 수 없는 저는 친일 후손입니다."

"조부의 친일 행적에 피해를 입고 상처받은 모든 분께 거듭 용서를 구합니다. 제가 조부님을 선택할 순 없는 일이겠지요. 평생 민족정기사업에 힘을 바치겠습니다."

홍 대표가 얼마나 훌륭한 정치인인지는 평가가 엇갈릴 수 있다. 하지만 반성할 줄 아는 것이 정치인의 기본자세라면 홍 대표는 계속 정치를 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많을 것 같다.

홍 대표의 사례를 부각시키는 국내 굴지의 기업이 있다. 바로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두산그룹이다.

두산은 오랜 역사만큼이나 부끄러운 친일 행적이 많다.

2013년부터 대한상공회의소를 이끌고 있는 박용만 회장을 비롯한 '용' 자 항렬 두산가(家) 형제들의 조부는 창씨개명을 한 매판(買辦)상인이자 <친일인명사전>에 실린 대표적 친일경제인 박승직(朴承稷)이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의 조부이자 두산그룹의 모태를 만든 박승직. 친일 매판상인이자 기업인으로 '친일인명사전'에 오른 인물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박승직은 18세에 포목행상을 시작해 30대 중반인 1886년 배오개(서울 광장시장 인근)에 '박승직상점'을 낸 후 거상(巨商)으로 급부상했다. 비결은 친일이었다. 

1909년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자 박승직은 이토를 추도하는 '국민대추도회' 발기인으로 참여했고, 3·1운동이 일어난 1919년엔 친일단체 '조선경제회' 이사에 올랐다.

3년 후엔 민족말살의 일선융화(日鮮融和)를 강조한 경제단체 '조선실업구락부' 발기인이자 평의회 임원을 지냈고, 반일운동 배척을 주장한 '동민회' 활동에도 열을 올렸다. 

1930년대 후반 그의 친일 행각은 더욱 노골화됐다. 1938년 <매일신보>가 주최한 신년 간담회에서 "중일전쟁의 책임은 전적으로 중국에 있으며, 조선인들이 보여준 거국일치의 애국정신에 찬사를 보낸다", "조선통치에 있어 조선총독부의 시정(施政)은 적절하므로 개선이 전혀 필요 없다" 같은 망언을 서슴지 않았다.

일제가 조선 청년들을 전쟁터에 총알받이로 내몰기 위해 조선지원병 제도를 급조하자, 박승직은 이를 "쌍수(雙手) 들어 축하"하는 담화를 발표하고 물심양면 도왔다. 

당시 <매일신보>에서 박승직은 "조선지원병 제도는 내선일체의 구현이고, 조선인도 제국 신민으로서 의무와 권리를 갖게 됐다"며 자랑스러워했다.

조선인 강제징용과 위안부 모집에도 깊숙이 참여한 정황도 포착된다.

박승직은 1938년 조선인 강제동원을 위한 선전조직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의 발기인과 평의원에 올랐다.

박승직은 일본 패망 후에도 딸을 친일 엘리트인 이우정의 아들에게 시집보내면서 사업과 사회적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사위 이인기는 1939년 일제가 세운 괴뢰국인 만주국의 젠다오성공서(間島省公署) 민생청 시학관에서 공직을 시작했다.

이후 1941년 친일단체 '흥아청년구락부'에 가입한 후 민생청 민생과장, 노무과장을 거쳐 1943년 안둥성 이사관으로 승진했다.

일제가 패망한 후 이인기는 서울대 상과대학 학장을 거쳐 대학원장에 올랐고, 1968년 국민교육헌장 제정을 사실상 주도했다.

당시 일부 대학교수가 "국민교육헌장은 일본 메이지 천황시대에 만들어진 '교육칙어'를 모방했다"고 비판하자, 박정희 정권은 이들을 해직하거나 긴급조치 위반으로 구속했다.

반면, 이인기는 1969년 숙명여대 총장으로 영전했다가 1974년 영남대 총장직을 맡았다.

1938년 2층으로 확장 개업한 '박승직상점' 입구(왼쪽)과 박승직 가족. ⓒ두산그룹, 자유경제원

창씨개명으로 '미키쇼우쇼크(三木承稷)'라는 이름을 얻은 박승직은 1941년 가게 간판도 '박승직상점'에서 '미키상사'로 바꿔 달았다.

해방 후 1948년 미키상사는 '두산상회'로 이름을 바꿨다.

친일보다 더 나쁜 것은 친일을 반성하지 않는 것이다.

'사람이 미래다'

두산이 인재경영을 하겠다며 오래전부터 내건 슬로건이다.

반성하지 않는 사람에게 어떤 미래가 있을까?

100년 기업이 자랑스러우려면 그 부끄러운 역사도 부끄러워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두산은 어느 누구도 부끄러운 과거사를 인정하거나 반성한 적이 없다. 언론에서 아무리 문제를 제기해도 어떤 반론이나 반박도 없다.

[두산그룹 역대 회장] 박두병, 정수창, 박용곤, 박용성, 박용만, 박정원 회장 ⓒ두산

우리가 일본 전범기업들을 비난하고 책임을 묻는 데 두산의 이런 무(無)반성은 명분을 잃게 하기에 충분하다.

우리가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을 비난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아무것도 모르는 일본의 미래세대에게 부끄러운 역사를 숨기고 있기 때문이다.

두산그룹과 그 오너들은 왜 부끄러운 역사에 침묵하는가. 또, 두산 구성원들은 그런 침묵에 아무 말도 못하는가.

조부의 친일 행각을 부끄러워하는 홍영표 대표의 얘기를 두산은 새길 필요가 있다.

"일제강점기 친일파의 행적들은 잊지 마시되, 그 후손은 어떤 길을 걷는지 지켜봐주십시오. 조부의 행적을 원망하지만 조국을 더 사랑하며 살아가겠습니다."

뉴스비전e  news@nv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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