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비전e] 캄보디아에서 길을 걷고 있는데 누군가 나를 붙잡았습니다. 여자아이가 엽서 한 묶음을 들고 있었습니다.

“엽서 사세요. 1달러에요.”

녹음기를 틀어 놓은 것 같았습니다. 1달러짜리 지폐를 건네고 엽서를 한 장 샀습니다. 그리고 섭씨 40도가 넘는 폭염에 숨이 막혀 카페에 들어갔습니다.

두 시간쯤 지났을까 짐을 챙겨 카페 문을 나오려는 순간 누군가 나에게 달려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나에게 엽서를 판 아이였습니다.

나는 조금 짜증이 났습니다. 또 나에게 엽서를 강매하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여행 중에 그런 아이들을 많이 본 탓입니다.

그 아이들은 대체로 안 사주는 사람은 빨리 포기하지만 한 번 사준 사람에게는 계속 사달라고 조릅니다.

이 아이도 그럴 것이라는 생각에 나는 어떤 말로 거절할까 고민했습니다. 아이는 엽서 대신 조그만 종이 한 장을 내밀었습니다. 종이에는 꽃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아이가 직접 그린 것이었습니다.

아이는 1달러짜리 엽서를 팔아준 나에게 보답하기 위해 내가 시원한 카페에 앉아 있는 동안 그늘 한 점 없는 더위 속에서 서툰 솜씨로 꽃을 그렸던 것입니다.

나는 아이를 오해한 것이 창피했습니다. 아이의 꽃 그림은 고마움을 표현한 세상에 단 하나뿐인 작품입니다.

여행을 하다 보면 저잣거리에서도 스승을 만나게 됩니다. 그 아이도 내게 감사가 무엇인지 가르쳐준 스승입니다.

그림은 아이가 나에게 행운을 빌어주기 위해 그린 것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아이가 그림을 잘 그리고 못 그리고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누군가 말했습니다.

“아이들은 영혼이 맑아서 어른들이 볼 수 없는 신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의 기도는 이루어집니다.”

사람들은 내가 늘 위험한 곳을 다니면서도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이 신기하다고 말합니다. 내가 안전했던 것은 그 아이의 기도 덕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알렉스 김 

아이들의 꿈을 찍는 포토그래퍼. 내셔널지오그래픽 인물상 부문 수상자. 알피니스트. 신세대 유목민. 파키스탄 알렉스초등학교 이사장. 원정자원봉사자. 에세이스트. 

이름은 알렉스이지만 부산 사투리가 구수한 남자. 스무 살 때 해난구조요원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으로 무작정 배낭을 메고 해외로 떠났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무엇이든 카메라에 담았다. 하늘, 햇빛, 바람, 구름, 그리고 사람들을 보며 깨달음을 얻었다. 

자연의 위대함에 겸손을 배우고, 하늘마을 사람들을 만나며 욕심을 내려놓고 소통하는 법을 알게 되었다. 

길 위에서 만난 사람은 스승이 되었고 친구가 되었다. 척박한 환경과 가난 때문에 배우고 싶어도 배울 수 없는 아이들을 위해 파키스탄에 알렉스초등학교를 지었다. 

65명의 학생이 마음껏 공부할 수 있도록 자선모임을 통해 지원하고 있다. 여행에서 얻은 소중한 경험을 나누고 현지 아이들을 돕기 위해 서울에서 ‘알렉스 타이하우스’라는 태국음식점을 운영하기도 했다. 기회가 될 때마다 봉사단을 조직해 기업들의 후원을 받아 고산지역 오지마을로 식량, 의약품, 학용품을 전달하고 있다. 

현재 파키스탄 오지에 두 번째 알렉스초등학교를 짓기 위해 후원회를 조직하고 있다. 현재 제주도에 머물며 김만덕기념관이 추진 중인, 지역 어르신 1,000명에게 장수사진을 찍어주는 ‘어르신 장수효도사진 나눔사업’에 재능기부 포토그래퍼로 활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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