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뉴스비전e 이장혁 기자] 정주영 명예회장과 정몽헌 회장의 유지를 받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남북경협의 주도권을 잡을 수있을까? 기다린 만큼 준비는 했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조변석개하는 북미관계는 어쩔 수 없다 해도 그룹은 훨씬 작아졌고 쟁쟁한 경쟁자도 많아졌다.

불투명한 북미관계 = 무엇보다 트럼프가 문제다.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우리 정부는 북한의 완전 비핵화를 확신할 때까지 제재의 틀은 유지하되 남북교류·협력에 필요한 사안에는 제재 면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미국과 국제사회에 4·27 판문점선언에 명시된 남북협력사업을 하는 데 필요한 부분에 한해 면제나 예외 신청을 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경협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없다. 철도·도로 사업 조사나 이산가족상봉사무소 상설화 같은 것은 북한에 경제적 혜택을 주지 않는 것으로 제재와 무관하지만, 개성공단이나 금강산관광 재개만 해도 국제사회가 북한의 비핵화 추진에 만족하고 제재가 해제되어야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금강산관광 사업에 사활을 걸고 있는 현대그룹에게는 난제가 아닐 수 없다.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의 참관 하에 확실하게 영변 핵시설을 폐기하는 것 같은 통큰 결단이 나오지 않는 한 전면적인 납북경협이 가능한 수준의 대북제재 해제는 힘들어 보인다. 

현정은 회장의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다.

체격과 체력, 너무 작고 약해져 = 남북관계가 상전벽해로 좋아진 게 맞지만 현대그룹은 예전의 화려했던 모습이 아니다. 

우선 외연이 너무 쪼그라들었다. 그나마 현 회장의 내핍경영 덕분에 살아남은 것이 기적이다. 사실상 매출을 떠받치고 있는 회사는 현대엘리베이터 정도다. 대북사업을 추진할 현대아산은 개점휴업 중이나 다름없다. 

현대그룹은 정주영 명예회장 생전에 북한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어 북한 당국으로부터 금강산관광 독점개발권을 따내긴 했지만,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은 사업이 재개된다 해도 투자여력이 예전같지 않다. 대규모 투자를 현대그룹이 감당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경쟁자들에 주도권 빼앗길 수도 = 미국 등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해소되고 남북경협이 본격화하면 어느 기업이 주도권을 쥐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과거엔 현대그룹이 최초이자 대북사업에서 거의 독점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지금은 아니다. 삼성, LG, SK, 현대차 등이 본격적으로 진출할 가능성이 있다. 철도, 항만 같은 인프라 사업이나 중공업, 반도체, 통신 등 대규모투자와 기술력이 요구되는 사업에서 현대그룹이 뛰어들 만한 것이 별로 없다. 

금광산관광사업도 독점권을 가지고 있지만, 대규모 투자를 위해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다른 그룹과 컨소시엄을 구성해야 할지도 모른다. ‘최초’가 ‘최고’가 될 수 없게 된 데는 불가항력적인 실기의 세월이 있다. 현 회장은 기다리고 준비해 온 만큼 억울함도 크다.

 

[현정은 회장의 귀환 소회 전문]

7년 만에 찾아간 평양은 몰라볼 정도로 변화했지만,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들을 만나서 감격스럽고 기뻤습니다.

무엇보다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께서 평양공동선언을 발표하시면서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정상화 추진을 언급하실 때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금강산관광이 시작된 지 20년, 중단된 지 10년이 넘었지만 남측과 북측에서 남북경협의 상징으로 금강산관광이 여전히 기억되고, 중요하게 여긴다는 사실에 사업자로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아울러 남북경협 사업에 헌신하신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 정몽헌 회장 얼굴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앞으로도 넘어야 할 많은 장애물이 있겠지만 이제 희망이 우리 앞에 있음을 느낍니다.

이에 남북경협의 개척자이자 선도자로서 현대그룹은 일희일비하지 않고 담담한 마음으로 남북경제협력에 적극 나설 것이며 나아가 남북간 평화와 공동번영에 작지만 혼신의 힘을 보탤 것을 약속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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