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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케미칼의 '신동빈 1명' 구하기

[데스크칼럼] 15년 전쯤 후배 기자 몇이 롯데 본사 로비에서 엘리베이터를 막 타려는 신동빈 회장(당시 부회장)을 발견하고 불이나케 달려가 동승하는 데 성공했다. 은둔의 경영자가 수행원도 없는 무방비 상태로 밀폐공간에서 기자들에게 ‘포위’되었으니 얼마나 당황했겠는가.

절호의 기회를 놓칠세라 기자들이 앞다퉈 질문 공세를 펼치자 가까스로 정신을 가다듬은 신 회장은 어눌한 한국말로 “제 방으로 가서 차 한 잔 하면서 얘기하자”고 제안했다. ​그 말을 믿은 ‘순진한’ 기자들은 내심 ‘대물’을 낚았다고 기뻐했을 것이다.

집무실 앞에 도착했을 때 신 회장은 “잠시 준비할 시간을 달라”고 양해를 구한 뒤 들어가 버렸다. 하지만 약속과 달리 신 회장은 다시 나오지 않았다. 대신 갑자기 계단을 뛰어오르는 소리가 요란하더니 경찰특공대처럼 들이닥친 보디가드들이 ‘연약한’ 기자들을 순식간에 제압해 건물 밖으로 추출해 버렸다.

영화처럼 박진감 넘치는 ‘신동빈 1명 구하기’는 그렇게 성공했다. 그런데 올 추석을 앞두고 <신동빈 1명 구하기2>가 흥행할 전망이다. 이번엔 집무실이 아니라 감옥에서 구해내는 미션이다. 구출작전에 투입된 특공대도 경호팀이 아니라 롯데케미칼 홍보팀이다.

롯데케미칼이 광고물량을 홍수처럼 쏟아내고 있다. 광고업계의 믿을 만한 소식통에 따르면 롯데케미칼이 발주하는 광고 건수가 전년 동기 대비 수십 배에 달한다. 롯데케미칼은 화학기업들이 대부분 그렇듯 원래 광고를 좀처럼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올 여름 들어 인쇄매체는 물론 방송에까지 대대적인 광고를 진행하고 있다.

일반 소비재를 판매하지 않는 장치산업 기업이라도 자사를 홍보하겠다는데 그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롯데케미칼의 광고 ‘폭주’는 양도 양이지만, 심상찮은 목적에 의심의 눈길이 쏠리고 있다. 무엇보다 지금 롯데케미칼이 광고업계가 쾌재를 부를 정도로 광고잔치를 벌일 형편이느냐는 지적의 목소리가 높다.

가장 큰 난관은 인도네시아 석유화학단지 건설 프로젝트다. 4조 원 넘는 투자가 진행되는 대규모 사업이 반 년째 답보 상태다. 그 사이 롯데케미칼의 주가도 곤두박질쳤다. 8월 말 현재 롯데케미칼 시가총액은 10조7,678억 원으로 연초 대비 1조6,795억 원이나 증발했다. 2월부터 5월까지 여섯 번이나 안전·환경 문제로 당국의 제재를 받은 것도 악재로 작용했다.

롯데는 이 모든 것이 신동빈 회장의 구속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신 회장은 지난해 12월 경영비리 1심 재판에서 징역 1년8개월에 집행유예 2년, 지난 2월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1심 재판에서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아 법정 구속됐다. 최근 두 사건 결심공판에서는 벌금 1,000억 원, 추징금 70억 원과 함께 징역 14년형을 선고받았다. 항소심에서도 승산이 있을 것 같지 않다는 것이 법조계의 지배적인 관측이다.​

김교현 롯데케미칼 사장은 오너를 구한 대가로 무엇을 얻으려는 것일까. 광고업계에서는 롯데케미칼이 독자적으로 판단한 것이 아니라 롯데지주가 롯데케미칼을 통해 집중적으로 광고물량을 풀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롯데가 그룹 차원에서 ‘신동빈 구하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의구심은 이제 확신에 가까워지고 있다.

롯데그룹, 롯데케미칼이 신 회장의 구속 때문에 고전하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까. 주주와 투자자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그룹 오너가 비리를 저질러 구속된 것이 기업의 전망을 불투명하게 할까, 오너가 비리를 저지른 것 자체가 기업의 전망을 불투명하게 할까?

신 회장의 구속은 당장은 충격일 수 있지만 조금만 더 멀리 보면 악재가 아니라 호재다. 롯데의 경영투명성을 강화하면 강화했지, 절대로 약화하진 않을 것이다. 오너라도 비리를 저지르면 처벌받는다는 ‘당연한’ 결과는 주식시장에서도 중요한 모멘텀이다.

이런 상식을 무시하고 다시 회삿돈을 써서 오너 구하기에 나선 롯데를 보면서 롯데 주주들은 무슨 생각을 할 것인가. 신 회장을 특사로 구출해내면 정말로 롯데가 좋아질까? 회삿돈을 쓰지 말아야 할 곳에 쓴 죄로 구속 수감된 신 회장이 그 죄값마저 회삿돈(광고비)으로 치른다면 그 죄는 또 무엇으로 값을 치를 것인가.

신 회장도 롯데그룹 수만 임직원 중 한 명일 뿐이다. 그것은 대한민국 국민이면(일본인이라도) 대한민국 땅에서 죄를 지으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1명’으로서 처벌을 받아야 한다. 롯데든 어디든 특별한 1명은 없다.

롯데는 신 회장을 구하는 데 쓰는 공력을 롯데를 더욱 투명하게 만드는 정도경영에 쓰는 편이 훨씬 효과적일 것이다. 지금 롯데가 구해야 할 것은 신 회장이 아니라 롯데다.

기자들과 차 한 잔 마실 자신감도 없어 집무실 문을 걸어 잠그고 경호팀에 구조요청을 한 신 회장 역시 옹졸한 생각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또 언론플레이를 통해 일신의 위기에서 벗어나려는 이기심에서 벗어나길 부탁한다.

롯데지주의 사주를 받은 롯데케미칼의 노력으로 <신동빈 1명 구하기2>가 성공할지도 모른다. 신 회장에겐 다행이겠지만 롯데에게는 불행하게도 흥행에 성공한다면 신 회장을 오래 전 짧게나마 인터뷰했던 인연도 있고 하니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밀러 대위가 전사하기 직전 라이언에게 남긴 말로 ‘축하’를 대신할 것이다.

“헛되이 살지 말라.”

뉴스비전e 편집국장  topgun@nv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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