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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비ⓔCEO] 이재용의 대망 ①인도의 달빛 환담

2018년 7월 9일 오후, 문재인 대통령은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함께 간디기념관에서 지하철을 타고 우타르프라데시 주 노이다로 이동했다. 삼성전자 제2공장 준공 기념식장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예정에 없던 ‘지하철 이동’은 모디 총리의 깜짝 제안으로 이루어졌다. “한국 기업이 건설한 지하철이니 함께 타보자”는 제안을 문 대통령이 흔쾌히 받아들인 것이다. 그 바람에 문 대통령은 오후 5시에 열릴 예정이던 행사장에 40분이나 늦게 도착했다.

지하철역에서 행사장 입구까지는 차량으로 이동했는데 문 대통령을 1시간이 넘도록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다. 다름 아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었다.

문 대통령이 차에서 내리자마자 경호원들도 놀랄 만큼 잰걸음으로 다가간 이 부회장은 90도로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10초 사이에 무려 4차례나 고개를 숙였다. 문 대통령은 웃으며 악수를 하고 나서 곧바로 대기실로 들어갔다.

대기실에서 땀을 식히며 넥타이를 고쳐 매고 있던 문 대통령은 그 시각 대기실 밖에서 대기하는 이 부회장을 불렀다. 문 대통령과 국내 기업집단 1위 삼성 총수의 첫 만남이 이루어진 것이다.

 

부탁 같은 경고?

‘90도 폴더 인사’는 이 부회장의 절박함을 보여준다. 이 부회장은 문 대통령이 청산하고자 하는 이른바 ‘적폐’의 피의자로 재판 중이다. 두 차례에 걸친 구속영장 청구가 기각되기는 했지만 판결이 어떻게 나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짧지만 강렬한 환담을 마치고 이 부회장은 문 대통령을 안내해 행사장으로 입장했다.

‘대기실 환담’은 일정에 없었다는 것이 청와대측의 설명이다.  물론 문 대통령의 일정에는 없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삼성의 일정에도 없는 갑작스런 미팅이었을까? 삼성의 행사에 ‘우연’은 없다. 총수가 등장하는 행사에서는 동선의 발걸음 하나까지 미리 체크하는 이른바 ‘초단위 리허설’은 삼성의 경쟁력이기도 하다.

우연을 가장한 필연적인 만남이든 아니든 중요한 것은 환담의 내용이다.

문 대통령이 이 부회장에게 던진 “한국에서도 더 많이 투자하고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어 주기를 바란다”는 말은 표현은 부탁이지만 내용은 경고에 가깝다.

삼성전자가 인도에 공장을 짓고 제품을 생산하는 것은 인도의 문제다. 투자도 고용도 인도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삼성전자와 이 부회장에게는 이득이 되어도 정작 한국에서는 별다른 효과가 없다.

문 대통령은 어쩌면 이 거대한 공장을 한국에 지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컸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바람일 뿐이다. 더 싼 임금, 더 적은 규제, 더 작은 법인세, 그리고 더 큰 시장을 쫓아 해외에 생산기지를 짓는 것은 우리 기업들에게도 당연한 추세가 된 지 오래다. 비즈니스에서 애국심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어느 정부도 더 큰 수익을 내겠다며 떠나는기업들을 막을 수는 없다.

 

대한민국은 5개월째 고용쇼크

사실 절박하기는 문 대통령도 이 부회장 못지 않을 수 있다. ‘적폐청산’에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고,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북미정상회담까지 이끌어내면서 대북관계에서도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지만, 그것은 절반의 성공에 불과하다. 경제는 또 다른 문제다. 대한민국은 지금 5개월째 고용쇼크 상태다.

기업이 움직이지 않으면 경제는 살아나지 않는다는 것을 문 대통령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적폐에 연루되어 재판 중인 이 부회장을 만난다는 것 자체가 부담일 수 있다. 그런 부담을 감수하고서라도 만날 수밖에 없는 절박함이 문 대통령에게도 있었을 것이다.

문 대통령이 기대하는 것과 이 부회장이 총족시켜 줄 수 있는 것 사이에는 적잖은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과거 궁지에 몰린 재계 총수들이 한 것처럼 사재출연으로 위기를 벗어나려는 시도는 적어도 현 정부에서는 역효과가 날 우려가 있다.

보다 근본적이고 확실한 투자와 고용창출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과연 삼성이 국내에서 문 대통령이 흡족할 만한 규모의 투자와 고용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을까. 이 부회장의 고민이 깊어지는 대목이다.

삼성은 국내 리딩 컴퍼니다. 삼성이 하면 다른 기업은 따라온다. 삼성이 얼마나 큰 투자와 고용 의지를 보여주느냐에 따라 재계 전체가 움직이는 폭이 달라지게 된다. 문 대통령의 주문에 대한 삼성의 답변이 주목받고 있는 이유다.

문 대통령의 투자와 고용창출 주문에 이 부회장은 “열심히 하겠다”만 했다. 열심히 하는 것보다 성과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갈수록 축소되는 삼성의 채용 규모

삼성은 문 대통령이 만족할 만한 대규모 고용투자를 할 수 있을까? 그것도 빠른 시간 안에 가시적으로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면 문제는 더욱 어려워진다.

당장 하반기 채용을 얼마나 할지가 당면과제다. 2014년 삼성은 그룹 전체에서 2만6,000명 가까이 채용한 이래 계속 채용 규모를 줄여오고 있다. 2015년 전년 대비 절반 가까이 줄어든 1만4,000여 명, 2016년에는 1만 명 남짓으로 더 줄었다. 지난해에는 1만 명 선마저 무너졌고 올해는 8,000명(예상치) 정도로 쪼그라들 전망이다.

이는 이 부회장의 실용과 혁신을 표방한 ‘뉴삼성’ 전략의 일환으로 삼성테크윈, 삼성종합화학, 삼성토탈, 삼성탈레스 등 계열사를 한화에 매각한 데 따른 감소도 있지만, 국정농단 사태 이후 기업활동이 소극적으로 바뀐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추세로 보면 앞으로 삼성의 채용 규모는 줄면 줄었지 늘어날 가능성은 희박하다. 채용 규모를 갑자기 대폭 늘리는 것은 쉽지 않다. 당장 필요하지도 않은 인원을 무턱대고 뽑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모디의 축사

삼성전자는 지난 2월 7일 이사회를 열고 평택에 두 번째 반도체 생산공장을 짓는 투자안건을 의결했다. 이 부회장이 집행유예로 풀려나고 이틀 만에 전격 진행된 의결이었다. 업계에선 30조 원대 투자로 추산했지만 현재 건설 중인 제2반도체공장은 완공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아 있다. 게다가 대규모 투자이긴 하지만 얼마나 많은 일자리가 창출될지도 미지수다.

지난해 완공된 첫번째 평택 반도체공장은 투자 금액만 37조6,000억 원에 달한다. 삼성전자는 공장 건설 당시 지역 생산유발 효과는 41조 원, 간접고용은 15만 명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전망치가 실현되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직접 고용은 3,000명 남짓이었다. 지난해 대규모(43조4,000억 원) 투자를 단행한 만큼 올해 투자도 늘리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평택공장은 문 대통령을 만나기 이전에 이미 확정되어 진행 중인 투자이므로 이 부회장으로서는 그 이상의 추가 투자 및 고용 의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삼성은 인도에서 무려 7만 명을 직접 고용하고 있으며, 노이다공장에서만 5,000명을 고용하고 있고, 이번 신공장 완공으로 1,000명 이상이 추가로 채용될 계획입니다.”

모디 총리가 이렇게 축사를 하는 동안 문 대통령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삼성이 국내에서 직접 고용하고 있는 직원은 10만 명이 채 안 된다.

 

손해가 이익을 끌고 온다

이 부회장은 이사회 눈치도 보지 않을 수 없다. 정부의 눈치를 보느라 무리한 투자와 채용을 감행하다가 내부적으로 부회장 일신을 위해 회사에 불리할 수도 있는 결정을 했다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다. 이 부회장의 고민은 깊어만 가고 있다.

이 부회장의 조부이자 삼성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은 생전에 이런 말을 남겼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과연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지를 잘 알고 있을 때 가장 행복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다행히 나는 기업을 인생의 전부로 알고 살아왔고 나의 갈 길이 사업보국(事業報國)에 있다는 신념에도 흔들림이 없다.”(1976) “나라가 만사의 기본이다. 모든 것은 나라가 기본이다. 나라가 잘되어야 기업도 잘되고 국민이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이다.”(1981) “선도적인 기술혁신으로 좋은 상품을 남보다 먼저 만들어내고 수출과 고용과 소득을 늘리며 경영합리화로 잉여를 많이 올려 기업확장의 재원을 마련함으로써궁극적으로 국가에 봉사하는 것이 기업인의 본분이며 사회적 의무가 아니겠는가.”(1976)

40년도 더 된 이야기의 핵심은 ‘사업보국’이다. 하지만 삼성은 글로벌기업이 된 지 오래다. 부친인 이건희 회장의 어록 중에서 해답을 찾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써야 할 곳, 안 써도 좋을 곳을 분간하라. 판단이 흐리면 낭패가 따른다.”

“본전 생각을 하지 말라. 손해가 이익을 끌고 온다.”

이 두 가지 가르침 중 이 부회장은 어느 것을 선택할까.

특별취재팀  news@nv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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